
다른 분들은 뭐 다들 보셨겠죠? 전 이제야 봤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2.
전작은 판타지였다는게 반전 아닌 반전이었는데, 이어지는 시리즈라고 할수 있는 이번 2는 대놓고 판타지군요.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장르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보고 즐기는거에는 최소한의 개연성만 있으면 족하잖아요? 결국 허구에 허구 리얼 따지는것만큼 우스운건 없죠. 리얼 따지는 재미로 즐기는 장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요.
여튼, 블록버스터 답게 볼거리가 많았고, 디테일한 디자인이나 화면, 특수효과등 비쥬얼 적으로도 굉장히 즐거운 그런 영화였습니다. 역시, 당대 최고의 비쥬얼 기술은 블록버스터에서 찾아볼수 있지요. 어느정도 눈이 생긴 지금에 와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눈에 잡힐듯 선하더군요. 생각할 거리가 있는 영화를 보는것도 좋습니다만, 최고의 자리에 있는 블록버스터를 즐기는것이야말로 좀더 많은 즐거움을 알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독이 대단한 위치에서 무언가 쓴소리를 하는 작품들은 고작 감독 한사람의 목소리지요. 하지만, 이런 블록버스터에는 누구 하나의 목소리가 뚜렷히 감지되지는 않지만, 수많은 상념들이 뒤섞여 말을 걸어오는...광장 한가운데 서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게 됩니다. 문제는, 너무 많은 목소리 때문에 어질어질해서...영화가 끝나면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도 안나게 됩니다만, 그래도 그 많은 함성속에서 같이 함성을 지른것 같은...갈증 해소감이야말로 엔터테인먼트에서 우리가 찾는것이 아닐지?
여튼...그렇게 아찔아찔하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즐기는 와중에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해적, 유령선, 해적의 저주, 식인종, 바다괴물, 보물, 모험......
실제, 캐리비안의 해적1까지는 조금 색다른 방식의 블록버스터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캐리비안의 해적2에 와서는 완전히 속았다 랄까요? 이거 소재적으로 보았을때는 어린이날 EBS 같은데서 틀어주는 오소독스한 해적모험 영화나, 놀이공원 같은데서 해적 테마로 꾸민 놀이기구에서 사용되는 그 '일반적인 이야기로서의 해적 모험'과 전혀 차이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색다른 배경의 블록버스터가 아닌, 블록버스터의 방법론으로 만들어진 '해적이야기'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저만 지금 깨달은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시각에서 보다보니 역시 창작의 최고봉은 소재나 발상이 아닌 구성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국 받아들이는 시각차이가 생기고, 그에서 비롯된 시각차이는 영화의 해석으로 직결되는 군요.
어찌 구성하고 어떤 세부를 삽입하느냐에 따라, 전형적인 해적 판타지가 되느냐, 아님 특이한 친구들의 유쾌한 바다모험 블록버스터가 되느냐...뭔가 조금은 알것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건그렇고, 조금 내적 이야기로 들어가보자면...숨막히는 스펙타클이라고 하던가? 그 쉴새없이 뛰어다니고 정신없는 상황변화를 이용해 몰입시키는 그 헐리우드식 전개방식. 그게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블록버스터류의 캐릭터 방식론이 아니란 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죽을 캐릭터, 살 캐릭터를 나눠놔서 관객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녀석들(섹스를 한다던지, 여성비하발언을 한다던지, 주연을 괴롭힌다던지)을 차례차례 경우의 수에 의거한 방식(물론 대사나 행동등으로 정해진 녀석들의 죽음이지만)으로 제거한뒤, 관객의 호감을 사는 최후의 한두명 정도 살려두는 뭐 그런 방식 있잖아요? 전 헐리우드의 그런거 굉장히 싫어합니다. 물론, 제작자가 관객들에게 전하고거 하는 바는 직선적으로 전해지지만, 그런건 교회 가서 신부한테 설교 듣는거랑 다를바 없는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응당 다양해야할 인간에 대한 고찰은 미뤄둔채 의도적인 선악 분류법으로 분류된 캐릭터들의 죽음으로 전달하는 테마란, 지금의 관객에게 아무런 호소력도 영향력도 끼칠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헌데, 이 캐러비안의 해적은 그렇지 않더군요. 입체적이다 못해, 아예 입체적, 평면적을 나눌만한 기준도 없이, 각 캐릭터가 처하는 여건과 환경, 그리고 이익에 따라 서로 연합하고 갈라서고 싸우고...진짜 한치 앞도 바라볼수 없는 사람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 없는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정말, 뒤를 조심해야 할 영화더군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캐리비안의 해적2를 보고 느낀 또 한가지는, 단순한 방식으로 캐릭터를 분류하는 블록버스터들을 납득할수 있게 되었다는 거일까요. 진짜, 이야기가 잘도 굴러간다 싶을 정도로 수라장이 되어 버리더군요. 진짜, 한순간이라도 전개의 고삐를 놔 버렸다간 이야기 차체를 놓칠 정도로 정신없는 전개가 되어 버립니다. 자질없는 제작자에게는 함부로 권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건 그렇고, 참 세상이 좋아진건지, 많이 달라진건지...장르계의 첨탑이자, 가장 전형적인 서브컬쳐인 판타지&오컬트가 어느새 일반 관객들에게 굉장히 친숙한 소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블록버스터들을 바라보면, 그 년도 개봉영화 최고봉에는 언제나 판타지의 위치가 부동적이더군요. 이건, 이미 일반에게 판타지란, 사전에 이해할것 많고 자질구레한것도 많으며, 무엇보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설정을 이해하려는 능동적인 이해행위가 수반되는 번거로운 장르 판타지를 즐기는법 또한 굉장히 일반적인 무언가가 되어 버린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는 정말 엄청난 일을 해버린 걸지도요 :D
다음 3편도 기대하면서, 5월 개봉작중엔 왜 이렇게 보고 싶은게 많은가 답답하기 까지 합니다 :D